‘성경 말씀’ 통해 경건한 가정·교회 만들고자 부단히 노력

<창간31주년 기획특집·종교개혁 505주년 기념 특집> 개혁교회는 계속 개혁되어야 한다.
학교와 주일학교 교육 통해 신실한 성도 만들기에 주력
하루 2번 이상의 가정 예배…하나님 나라의 실현 우선시
요한 칼빈, 성경의 바른 이해 위해 역사적-문법적 해석 제시

기독타임스 | 기사입력 2023/05/23 [14:44]

‘성경 말씀’ 통해 경건한 가정·교회 만들고자 부단히 노력

<창간31주년 기획특집·종교개혁 505주년 기념 특집> 개혁교회는 계속 개혁되어야 한다.
학교와 주일학교 교육 통해 신실한 성도 만들기에 주력
하루 2번 이상의 가정 예배…하나님 나라의 실현 우선시
요한 칼빈, 성경의 바른 이해 위해 역사적-문법적 해석 제시

기독타임스 | 입력 : 2023/05/23 [14:44]

▲ 영국 국회의사당. 의회 민주주의의 산실이라고 볼 수 있는 영국의 상징물이 바로 이 건물이며 1643년 소집된 웨스트민스터 종교 회의가 열린 웨스트민스터 홀도 이 건물 왼쪽 편에 위치하고 있다.     ©

 

11. 청교도 운동 이해 / 청교도와 학교교육

청교도들에게 학교교육의 주된 목적 역시 그들의 자녀들을 기독교인으로 만드는데 있었다. 뉴잉글랜드 청교도들의 학교 제도는 초등학교(Resding School), 중등학교(Grammar School), 그리고 대학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와 같은 학교체제에서 교육내용은 바로 기독교에 관한 것뿐이었다. 예를 들면 뉴잉글랜드의 청교도 자녀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영어를 배우게 되는데, 그때 교재로 사용하던 책이 바로 뉴잉글랜드 프라이머(New England Primer)이다. 이 책을 통하여 청교도 자녀들은 영어 알파벳의 A자를 배우면서 아담의 타락을 배웠다. 곧 {아담의 타락 안에서 우리는 모두 죄를 범하였다}(In Adams fall, we sinned all)는 교리를 배웠다. 그리고 초등학교를 졸업한 자는 중등학교에 진학하는데, 중등학교 과정을 통하여 그들은 성경적인 주제와 함께 기독교의 고전을 연구함으로 기독교인으로 세상을 어떻게 살 것인가를 배웠다. 그리고 대학에 들어가면 기독교 지도자로서 필요한 자질을 성경적 관점에서 배웠다. 

 

12. 청교도 운동 이해 / 청교도와 주일학교 교육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자녀의 신앙교육을 교회에 주로 의존한다. 그러나 청교도들은 자녀의 신앙교육에서 교회교육이나 학교교육보다는 가정에서 신앙교육을 우선으로 여겼다. 곧 청교도들은 가정교육과 학교교육을 근거로 하여 교회에서의 신앙교육을 실시하였다. 자녀의 영혼을 타인에게 맞기는 것보다 는 부모 스스로가 우선적으로 책임지겠다는 것이 바로 청교도들의 생각이었다. 따라서 청교도들은 자녀들이 어렸을 때부터 가정에서 신앙으로 교육하 였고 목사의 설교를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되면 장년 예배에 참석케하여 설교를 듣게 하였다. 설교말씀을 듣는 것보다 더 나은 신앙교육방법은 없었다. 따라서 부모들은 설교시간에 아이들이 설교를 이해하도록 도와주었고, 설교 말씀을 통하여 신앙적인 격려를 행하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예배가 끝나면 집에 돌아와, 가장은 자녀에게 설교시간에 무엇을 들었으며 얼마나 이해했는지 어려운 말씀은 없었나를 살핀 다음, 그들에게 들은 말씀을 설명하고 생활 가운데 실천하도록 하였다. 이와 같이 청교도들은 가정, 주일학교교육을 통하여 하나의 신실한 성도를 생산함으로 경건한 가정, 경건한 교회, 경건한 사회를 건설하고자 하였다.

 

13. 청교도 운동 이해 / 청교도와 가정예배

청교도들의 신앙생활에서 특기할만한 것은 바로 가정예배의 실천이다. 영국 청교도들에게 큰 영향력을 행사한 바 있는 윌리엄 퍼킨즈(William Perkins)는 가정의 영적인 건강을 유지하기 위하여 하루 2번 이상의 가정예배를 드릴 것을 제안하였다. 퍼킨즈의 교훈을 따라 청교도들은 아침과 저녁으로 매일 2회 이상의 가정예배를 드리면서 경건을 실천하였다. 아침과 저녁에 온 식구가 모여 가정예배를 드리면서 청교도들은 아침예배 때에는 하루 동안 있게 될 일들을 위하여 기도하였고 저녁예배 때에는 하루 동안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는 기도를 드렸다. 즉 아침 기도시간에 가장은 가족의 모든 죄를 고백하면서 죄의 용서를 구하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하는 예배를 드리면서 하루 동안 있게 될 일을 위하여 기도하였다. 아침 기도회가 끝나고 식사시간이 되면 두 번이나 기도하였다. 식사를 앞두고 음식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릴뿐만 아니라 식사를 마치고 감사기도를 드렸다. 

청교도들에게 음식은 하나님의 선하심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음식이 필요하다는 것은 바로 인간이 음식없이는 살 수 없고 하나님의 은혜를 떠나 살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었다. 식사시간에 청교도들은 육적인 양식만이 아니라 영적인 양식도 주셔서 굶주리지 않기를 기도하였다. 식사 후 드리는 기도는 하나의 축도 형태로 ‘가족들이 식탁에서 떠나 세상으로 돌아감’으로 그들이 서 있는 곳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실현하도록 기도하였다. 저녁에 드리는 가정예배에서 청교도들은 인생의 모든 여정을 마치고 임종을 맞는 사람처럼 깊은 잠을 자기 전에 하루의 일과를 돌아봄으로 자기 성찰을 하는 시간으로 삼았다. 따라서 청교도들에게 저녁예배는 아침예배보다도 진지하였고, 늘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칭송이 있었다. 이와 같이 가정예배를 통하여 청교도들은 가정의 경건을 유지하였다. 

그래서 청교도들에게 무엇보다도 중요한 과제는 하나님의 나라의 실현이었다. 그들은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고 하신 우리 주님의 말씀에 따라 이 세상에서의 성공보다는 그리스도의 나라에서 상받기를 바라고 분투하였다. 그 결과로 청교도들은 영적으로나 육적으로도 엄청난 축복을 받았다. 비록 이 세상에서 행복을 누리는 것보다도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원한 축복을 누리는 것을 우선 시 하였지만, 그들은 세상적인 축복도 넘치도록 받았다. 먼저 미국 10대 명문대학 가운데 하나인 듀크대학의 교수 죠지 마스덴(George Marsden)의 연구보고를 살펴보자. 

그에 의하면 제1차 세계대전 이전 미국의 정치, 문화, 경제계를 이끌어왔던 인물 가운데 8명 중 2명은 미국에 이민하여 온 다양한 인종들로서 그들은 바로 청교도의 후손이거나 청교도적인 신앙교육을 받은 사람들이었다. 또한 미국의 복음주의적인 목사 팀 라헤이의 글을 주의하여 보자. 라헤이는 {성령충만한 가정의 비결}이라는 책에서 같은 시대 같은 장소에서 살았던 두 가정, 막스 쥬크스(Max Jukes)라는 사람의 가정과 죠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e)의 가정을 비교하고 있다. 쥬크스는 불신자로 불신자와 결혼하여 수 많은 자녀를 두었다. 그의 자손 1천 26명을 연구한 결과 3백 명이 일찍 죽었고, 1백 명이 13년에 한 번 정도 교도소에 갔으며, 1백 90명은 창녀였고, 1백 명은 알콜 중독자였다. 결과적으로 쥬크스의 자손 가운데는 한 사람도 미국 사회에 공헌한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뉴잉글랜드의 청교도였던 죠나단 에드워즈는 신실한 그리스도인으로 기독교도와 결혼하였다. 그의 자손 7백 29명을 연구한 결과 3백여명의 복음 전도자가 나왔고, 65명의 교수, 13명의 대학장, 60명의 작가와 3명의 국회의원, 그리고 1명의 부통령이 나왔다. 

 

14. 청교도 운동 이해 / 청교도와 교회의 개혁 

16세기 종교개혁운동이 일어나면서 루터의 사상을 중심으로 하는 루터파(Lutherans)와 칼빈의 신학을 따르는 칼빈주의자들(Calvinists), 기존의 모든 질서를 부인하면서 초대교회로의 환원을 주장하였던 재침례파와 같은 교파들이 나타났다. 

이들은 한결같이 오직 성경만이 무오하므로 신앙의 기준과 척도가 된다고 주장하면서 성경에 근거하여 로마 천주교회의 그릇된 교리, 예배, 교회정부 형태로부터 교회를 개혁하고자 하였다. 개혁자들이 성경에 근거하여 교회를 개혁하고자 하였음에도 개신교회가 여러 가지 교단으로 교회가 나누이게 된 배경에는 성경 해석상의 차이, 신학적인 전제의 차이, 그리고 개혁 방법의 차이가 있다. 먼저 성경해석에 대하여 살펴보자. 성경에는 문자적, 또는 상징적이거나 비유적 해석을 요하는 구절들이 허다하게 많다. 이와 같은 성경본문의 말씀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신학적인 입장이 달라질 수 있다. 성경을 문자적으로 해석해야 할 부분에서 영적으로 해석한다든지, 영적인 의미를 문자적으로 해석하므로 성경 본문이 원래 제시하고자 하는 의미가 다른 뜻으로 왜곡되게 변질 될 수 있다. 예를 들어보자. 그리스도의 열 두 제자라는 말을 설명 할 때, [12]라는 수를 영적으로 해석한다면 문자적인 [12]라는 말의 의미는 완전하게 사라지게 된다. 그러나 성경은 때로 비유적인 해석을 요구하기도 한다.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너는 반석이라 이 반석 위에 내가 교회를 세우리라}(마 16:18)고 하신 말씀은 전후 문맥상 비유적인 의미를 가지는 말씀으로 베드로가 고백한 믿음 위에 교회를 세우겠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이를 문자적으로 해석하여 반석을 베드로라고 주장한다면 로마 교황의 베드로의 후 계설을 주장하는 교황주의자의 입장이 된다. 또한 {이것은 너희를 위해 주는 내 몸이라}(눅 22:19)라고 하신 말씀은 분명히 상징적인 표현이다. 그러나 로마 천주교도들은 [떡이 바로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해석하면서 사제가 떡을 떼는 순간 성찬 시의 떡은 그리스도의 살로 변한다는 화체설을 주장한다.

종교개혁 당시 토마스 뮌쳐(Thomas M ntzor)는 기성교회의 존재를 부정하는 과격파가 출현하도록 고무한 인물이었다. 그는 {내가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마 10:34)고 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 가운데 [검]을 문자적인 [검]으로 해석하여 그리스도인은 검으로 무장할 것을 주장하면서 과격한 농민 혁명을 부추겼다. 이와 같이 성경을 로마 천주교도들처럼 시중적인 의미로 이해한다든지, 루터란들과 같이 문자적으로만 해석한다면, 성경이 제시하고자 하는 바른 의미에서 멀리 떠날 수 있다. 그러므로 성경 본문에 대한 바른 해석은 성경의 내용을 바로 이해하는 지름길이라고 말할 수 있다.

성경의 바른 뜻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바른 해석방법이 요구되는데 그와 같은 바른 해석방법을 제시한 신학자는 요한 칼빈이다. 그는 로마 천주교회의 성경 해석방법을 비판하면서 문자적인 성경 해석을 주장한 루터나 과격파들과는 달리 성경의 본문에 대한 객관적인 해석을 추구하였다. 곧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시고자 하는 원래의 의미를 바로 터득하기 위해서는 성경이 쓰여진 당시의 상황을 아는 일이 무엇보다도 우선 되어야 한다고 성경의 역사적인 해석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전후문맥을 바로 살피지 못하게 될 때, 성경이 전해주고자 하는 원래의 뜻에서 떠날 수도 있기 때문에 성경 본문에 대한 역사적 해석 위에 문법적인 해석이 첨가되어야 한다고 역설하므로 성경의 역사적-문법적인 해석(historico-grammatical exegesis)의 길을 터 놓았다. 칼빈은 역사적 문법적 성경해석에 기초하여 로마 천주교회나 재침례교회의 성경해석을 비판하고 개혁주의적인 신학운동을 전개하였다.            

정리/신춘섭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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