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개혁의 핵심요소로 작용한 ‘설교’

<창간31주년 기획특집·종교개혁 505주년 기념 특집> 개혁교회는 계속 개혁되어야 한다.
루터·칼빈·쯔빙글리 등 위대한 설교자이자 선지자
종교개혁 통해 계시·진리·복음에 대한 관심 커져가
목사를 통해 하나님께서 성도에 말씀하신단 인식↑
이로 인해 17세기 스코틀랜드 ‘설교의 황금기’ 꼽혀

기독타임스 | 기사입력 2023/08/06 [14:55]

교회개혁의 핵심요소로 작용한 ‘설교’

<창간31주년 기획특집·종교개혁 505주년 기념 특집> 개혁교회는 계속 개혁되어야 한다.
루터·칼빈·쯔빙글리 등 위대한 설교자이자 선지자
종교개혁 통해 계시·진리·복음에 대한 관심 커져가
목사를 통해 하나님께서 성도에 말씀하신단 인식↑
이로 인해 17세기 스코틀랜드 ‘설교의 황금기’ 꼽혀

기독타임스 | 입력 : 2023/08/06 [14:55]

▲ 에딘버러 길 바닥에서 역사가 느껴진다.     ©

 

17세기 스코틀랜드 교회 생활

 

4. 17세기 강단 사역

17세기 스코틀랜드에 있어서 강단 사역이야말로 가장 두드러진 요소였다. ‘설교 시간’ 하면 대체로 예배시간과 동의어로 사용될 정도로 예배에 있어서 설교는 가장 핵심 요소였다. 이러한 사상은 칼빈의 것과 다르지 않았다. 교회의 참된 표지 역시 하나님의 말씀 선포가 첫째였고 올바른 성례와 정당한 권징 시행이 그 뒤를 이은 것이었다. 실지로 종교개혁 시대 이전의 교회에서는 하나님 말씀 선포사역이 결핍되어 있었다. 성직자들의 무지가 극에 달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종교개혁을 통해서 하나님 말씀에 대한 재발견은 자연스럽게 말씀에 대한 강해를 요구하게 되었다. 초대교회의 모습을 회복하자고 했을 때 지도자들이 발견한 것은 예수의 가르침과 사도들의 가르침 및 기독교회의 확장에서 가장 두드러진 것이 설교 사역임을 발견하게 된 것이었다. 그리하여 종교개혁에서 설교야말로 교회 개혁의 핵심 요소로 작용하게 된 것이다. 루터나 칼빈, 쯔빙글리, 낙스가 다 위대한 설교자였고 제사장이라기보다는 선지자들이었다. 르네상스가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대한 신선한 흥미를 불러일으키자 종교개혁을 통해서 이제는 계시와 진리 및 복음에 대한 관심이 최전방에 나서게 되었다. 목사는 이제 더 이상 사제의 기능을 감당하는 자로서가 아니라 설교 장로(preaching elder)로 인식하게 되었다. 모든 성도들은 성찬에 참여하게 하였는데 그 전에 세례 받은 여부만이 아니라 그들의 삶과 하나님 말씀에 대한 지식 정도를 점검하였다. 예를 들면 십계명과 주기도문 및 사도신경 같은 것을 물었다. 

목사는 높은 지식수준이 요구되었으며, 임지에 부임하게 되면 성경과 교회당 열쇠가 주어졌다. 개혁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배우기 위하여 그리고 설교에 대한 이해를 위하여 교육 시설을 준비해야 한다고 느꼈다. 설교는 칼빈의 경우처럼 대체로 강해 설교였다. 설교 없이는 성례가 집전 되지 않았으며 심지어 기도와 찬송가운데서도 복음주의적인 가르침 등을 주입하는데 힘을 기울였다. 잉글랜드나 스코틀랜드에서 흥행했던 신앙 강좌(Lectureships)는 목사의 가르치는 기능을 더욱 강화시켰다. 따라서 종교개혁 이후 목사의 주된 업무는 설교하는 것으로 확고히 자리 잡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설교 작성과 전달 사역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게 되었다. 

여기에 하나의 혁명적인 일이 벌어졌는데 중세시대에 있었던 것처럼 사람들이 하나님을 예배할 때 주로 예식에 참여하는 것으로 만족하던 것이 이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으로 전환이 이루어진 것이다. 전에는 교회당에 오면 예식에 참석하고 설교를 듣는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으나 이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는 것이 자리를 잡게 되었다. 목사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말씀하신다는 것을 성도들이 새롭게 인식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해서 17세기 스코틀랜드는 잉글랜드의 청교도들과 더불어 설교의 황금기라고 할 수 있는 시대를 창출하였다. 당시의 설교자들에게는 성경에 박식하여야 했으며 신학적인 논지들을 잘 강론해야 했으며 라틴어와 중세시대부터 성행하던 수사학 및 종교개혁자들의 글들을 충분히 섭렵하도록 하였다. 

교회당은 내부나 외부 장식에 있어서 아주 단순하였고 강단은 항상 교회당 중앙에 위치해 있었다. 감독주의자들이 지도적인 위치에 있을 때는 강단이 회중석 가운데 있도록 옮겨지기도 했으나 장로교에서는 전통적으로 설교가 예배의 중심이 되면서 강단 역시 교회당 중앙에 위치하게 된 것이다. 목사가 중앙에 있는 강단에 서서 예배를 인도하고 선창자가 아래 강단에서 찬양을 인도하였으며 장로들은 회중석에 자리 잡고 앉았었다. 목사는 까만 가운을 입고 예배를 집전하며 설교하였다.

설교는 길었다. 이 당시 예배는 3시간 동안 진행되었다. 첫 한 시간은 독경사에 의하여 주로 성경을 읽는 시간이었고 목사는 기도와 찬양 및 설교를 맡아 진행하였다. 물론 설교시간은 대체로 한 시간 정도였다. 설교자들의 열정과 능력 있는 설교는 종종 회중들로 하여금 시간가는 줄 모르게 하였고 어떤 때는 두세 시간 동안 설교를 하기도 하였다. 이 당시에 감독들 중에도 에든버러 초대 감독인 윌리암 포버스는 한번은 6시간 동안 강론하였다는 기록도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장로교 목사들의 설교와 목회기도는 매우 길었다. 그렇다고 항상 한 시간 이상 넘어가는 설교를 한 것이 아니라 특별한 경우에 한 시간 이상 설교를 하였다. 

존 리빙스톤 목사는 1630년에 그가 Shotts 교회에서 설교할 때 에스겔 26:25, 26절 말씀을 가지고 한 시간 반을 설교하였다고 하였다. 그런데 설교 결론부분에 와서 그는 권면과 경고의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또 다른 한 시간이 흘렀다고 기록하고 있다(The life of Mr John Livingstone, Wodrow Soc. Select Biographies 1, p. 138f.). 그러나 리빙스톤 목사는 평상시에는 30여분을 넘지 않는 설교를 한 사람이었다. 이처럼 대체로 두세 시간씩 설교하는 몇몇 사례들을 제외하고는 이 당시의 설교 시간은 일반적으로 한 시간 정도였다고 볼 수 있다. 어떤 곳은 한 시간을 넘으면 벌금을 가한다는 교회도 있었다(1642년 Turriff 노회 결정).

성도들은 설교를 들으며 받아 적도록 권장되었고 학생들은 그들이 주일에 들은 설교가 무엇이었는지 학교에서 시험을 보아야 했다. 리차드 백스터 목사의 권면대로 목사의 설교가 가정에서도 반복되도록 교육시켰던 것이다(그러한 사례는 와리스톤의 일기에 자주 등장하고 있다). 

강해 설교를 했기 때문에 성경 한권을 마치기까지 오랜 시간이 소요되었다. 라덴의 한 목사는 너무나 오래 같은 성경을 가지고 설교하였기 때문에 노회는 본문을 바꾸라고 시정 명령을 내리기도 하였다. 설교는 원고를 보고 읽지 않았고 철저한 준비를 통하여 메모만 가지고 즉흥적인 설교를 하였다. 설교자들은 철저하게 원고를 준비하고 난 후 마음으로 그 내용을 습득하고 강단에서는 원고 없이 설교하였던 것이다. 

‘설교자의 능력과 목회 성공여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교회당에 모이느냐가 아니라 일반적으로 성도들이 성경에 대한 지식과 교리적인 지식이 어느 정도 되느냐에 따라서 규정하였다’(G. D. Henderson, Religious Life of 17th Century Scotland, Cambridge, 1937, p. 200). 이러한 지식 여부를 위하여 노회는 정기적인 심방을 촉구하였고 목사들은 심방을 통해서 선포된 말씀이 얼마나 성도들의 심령에 박혔는지를 확인할 수 있게 하였다. 장로교 목사들은 설교의 은사를 지닌 자들로서 자신들을 영혼을 탐구하는 능력 있는 설교자란 별명이 붙었던 것에 비해 감독주의자들은 메마른 도덕 강좌를 하는 자들이라고 불렀다. 심령을 울리고 눈에 눈물이 흐르며 가슴을 치게 하는 능력 있는 설교자들이 장로교 목사들이었다.

설교에는 본문 강해, 교리적 설명뿐 아니라 적용까지도 포함시켰다. 설교대지 구분은 교리와 논리 및 적용에 따라 구분되었다. 교리적인 가르침을 제시하고 그 가르침을 입증하기 위한 논리를 펼쳤으며 그리고 우리들의 삶에 적용시켜나갔다. 그러나 이 시대가 언약도들의 활동이 있었던 때였기 때문에 설교에 종종 군주에 대하여 또는 정치 지도자들에 대한 개인적인 공격이 나타나곤 하였다. 언약도 순교자 중 한 사람인 멕카일 목사는 선언하기를 ‘교회와 하나님의 백성들이 권좌에 앉아 있는 아합에 의하여, 정사를 맡고 있는 하만에 의하여, 교회 안에서는 유다에 의하여 핍박을 받고 있다’고 했다(John Howe, The Scots Worthies). 존 샘플(John Semple, 1607-1677) 목사는 감독제도에 대항하는 일에 있어서 매우 열정적이었다. 그가 성경에서 어느 본문을 설교하든지 반드시 그 설교에 감독들을 파헤치는 언급을 하거나 감독주의를 공격하는 말을 했다. 

당시의 설교들은 신학적이고 실천적이며 영적이었다. 심령을 꿰뚫는 능력이 있었다. 특별히 옥외설교자들의 설교는 상당히 복음전도적인 설교였다. 그 당시의 가련한 스코틀랜드의 영적 상태를 예리하게 지적하면서 하나님께로 돌아와야만 하는 복음적인 설교를 하였던 것이다. 존 키드(John Kid, d. 1679?) 목사는 ‘설교에 그리스도가 없다면 그 설교는 손가락질 받을 가치조차도 없는 것이다’라고 했다(G. D. Henderson, Ibid., p. 218). 이들 목사들은 깊은 경건과 확신을 가지고 말씀을 전파하였고 복음을 선포함에 있어서 거의 광신적이라고 할 정도로 진지하게 감동을 끼치는 설교자들이었다.

 

맺는 말

핸더슨 교수는 그의 책에서 이 시대의 설교자들에 대하여 결론을 지으면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성품과 학문에 의하여 목사는 그의 교구의 지도자였다. 목사에게 설교는 지방, 국가, 도덕 및 영적인 일에 대한 정보와 교육을 위한 최고의 자원이었다. 주중의 생활의 단조로움을 해결해 주는 설교만큼 흥미 있고 관심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었다. 교회는 그 시대를 지배하였다. 그 일은 주로 강단을 통해서 지배하였다’(Ibid., p. 219). 학문과 경건의 능력이 겸비되어 있는 설교자들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복음의 능력은 핍박을 받고 있는 언약도 평신도들을 하나로 묶어주었고 신앙으로 승리하게 한 원동력이었으며 살인시대가 막을 내리고 18세기에 스코틀랜드에서 장로회주의가 재형성되게 하는 근원이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오늘날 복음 선포가 점점 사라지고 있는 이 시대의 암울한 상황에 죄악의 포승줄에 매여 지옥으로 끌려가는 인생들을 무엇으로 건질 것인가? 

정리/신춘섭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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