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께 효도위해 고향을 지키고 있습니다”

[신앙과 삶] 이일근 장로(신지제일교회)

기독타임스 | 기사입력 2018/06/07 [17:44]

“부모님께 효도위해 고향을 지키고 있습니다”

[신앙과 삶] 이일근 장로(신지제일교회)

기독타임스 | 입력 : 2018/06/07 [17:44]

이일근 장로 예수영접 후 부모사랑 신앙정립

군 생활 통해 받은 은혜 고향공동체 섬기며 농촌사랑 기도

  

▲ 비파농장을 일구고 있는 이일근장로     © 기독타임스

 

완도군 신지면을 지키는 파수꾼이 있어서 화제다.

화제의 인물은 이일근 장로( 00세)가 바로 그 주인공.

“부모님께 효도하고 싶어서 고향을 지키고 있습니다.”

 

이 장로는 장남으로 태어나 ‘내가 고향을 떠나면 누가 지킬 것인가. 부모님은 누가 모실 것인가’라는 생각에 수번의 결혼을 위한 선을 뵈면서 ‘장남이다’, ‘농부다’라는 이유로 퇴자를 맞아 가면서도 궤도 수정 없이 끝까지 부모를 모시고 고향을 지켜오고 있다.

 

그의 이런 결단은 오직 하나님이 주신 ‘믿음’ 때문이란다.

 

군 생활을 통하여 선임병사들이 섬겨준 신앙의 은혜로 변화 된 이 장로는 에베소서6장1~3절을 통하여 약속하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 할 뿐이라고 고백한다.

 

이 장로의 이러한 고백이 있기 까지는 남다른 군 생활이 있다.

 

선임 병사들의 믿음의 섬김이 그를 예수를 영접하게 한 것이다.

 

군 생활 전 누나의 전도는 교회를 나아가지는 못했지만 개인의 신상명세서의 종교란에 기독교라고 쓰게 된 동기가 되고 결국 선배 병사들이 교회로 인도하는 발판이 된 것이다.

 

이 장로는 누나의 전도에는 교회 나아가는 것을 그렇게도 머뭇거렸지만 선배들의 섬김의 도는 이 장로를 사랑의 도가니에 빠지게 한 것이다.

 

사랑을 보여준 그들의 생명력 있는 전도는 예수님을 영접하기에 충분했다는 고백이다.

 

▲ 이일근 장로의 군 생활은 믿음의 발판이 되는 인생의 기초석이었다.     © 기독타임스

 

처음 군에 입대 했을 때는 교회에 대한 애착이 별로 없었지만 70년대 말의 군 생활이 그렇게 사랑의 공동체로 뭉쳐있는 부대는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부하 병사를 아끼는 예수님의 사랑 실천에 감동 된 것이다.

 

이 장로의 군 생활은 통신병으로 시작하여 소대 군종사병으로 섬기며 전역을 하게 되는데 그가 보이는 전역 증(사진)은 아직도 그의 군 생활 앨범에 고이 간직되어 있었다.

 

인사명령 제8호

 

병장 이일근.

 

80년 3월 13일 신지면으로...

 

32개월 가까운 군 생활이 너무나 은혜로워서 장기 지원을 꿈꾸기도 한 이 장로.

 

하지만 고향의 부모님을 누가 모셔야 하나!

 

농사는 누가 지어야 하나!

 

이런 생각이 그의 뇌리를 스쳐 지나가며 엡6:1~3을 묵상한 것이다.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인륜의 첫 계명이다. 보이는 부모님을 잘 공경하는 것이 보이지 아니하신 하나님을 또한 잘 섬기는 신앙인이다”라고 기도한 이 장로.

 

지금까지 신지도를 지키며 농사일과 함께 부모님을 섬기는 일에 후회 해 본적이 없다고 한다.

 

하지만 부모님은 처음부터 이 장로가 교회 다니는 것을 허락하지는 않았다.

 

▲ 이일근 장로 가족사진 큰 딸 하정 결혼식 기념. 앞줄 박애순권사. 하미(뒷줄 오른쪽 부터) 이 장로, 아들 시안, 막내 하은이다.    

© 기독타임스


지금 이 장로의 주택 뒷동산에는 지금도 무당이 거주한 옛 집이 그대로 남아 있고 어머니는 그의 영향으로 그 곳 뒤편에 신당을 꾸미고 제례를 행하였으니 처음에는 영적 갈등이 보통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현재 신지제일교회 권사이신 어머니의 반대는 보통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영적전쟁이었다.

 

이런 상태에서 전역 후 이 장로에게 나타나는 현상중의 하나는 일명 ‘가위눌림’의 연속이었다.

 

교회를 다니지 못하도록 시도 때도 없이 이 장로의 목을 조루고 밟고 죽이려는 귀신들의 역사로 나날이 괴로웠단다.

 

이런 삶이 계속되면서 교회에 대한 갈등도 일어났지만 살아계신 하나님은 귀신의 존재를 체험케 하고 모친의 생각을 변화 시킨 것이다.

 

“내가 신봉하는 귀신이 참 신이라면 왜 내 아들을 죽이려 하는 가” 모친인 김순례 권사는 이런 생각이 번쩍임을 인지하고 “그래 참 신이라면 아들을 살리는 신을 믿어야 한다”고 고백하게 된다.

 

“어머니는 어려서부터 저의 외할머니 신앙의 기도로 자랐다”며 “우리 가정이 믿음의 가정이 된 것은 외할머니의 신앙의 기도 때문”이라고 이 장로는 미소를 머금는다.

 

믿음의 기도와 싸움이 계속되는 동안 신지제일교회 당시의 박석운 목사님의 계속된 영적 지도, 그리고 기도로 승리의 개가를 부르며 믿음의 길을 순탄하게 걸어오게 된 것이다.

 

7남매 중 장남인 그는 6세부터 소를 몰고 신지면 벌판에서 소에게 꼴을 먹이며 모내기 등 농사일에 적지 않은 고생을 했다.

 

그래서 주의의 선후배 친구들은 돈을 벌어 고생하지 않겠다고 너도나도 떠나는 고향을 이 장로라고 생각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다.

 

남들이 떠난 고향을 본인도 등지고도 싶었지만 그의 부모사랑 고향사랑 농촌사랑은 남달랐던 것이다.

 

그의 이런 생각과 믿음은 하나님의 은혜이기에 특히 군 생활을 통하여 받은 은혜를 고향에서 펼치고 싶은 작은 꿈이 있었기 때문이다.

 

섬김의 공동체를 만들고 잘사는 고향을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

 

▲ 해외 연수교육을 통하여 이일근 장로와 박애순권사는 두손을 잡고 섬김의 공동체를 약속하기도 했다.     © 기독타임스


교회에서도 장로로 목사님과 성도님들을 섬기며, 섬김의 교회 공동체로, 가정에서는 가정의 공동체로, 생활 속에서는 이웃과 함께 섬김의 사회 공동체를 기도하고 있었던 것이다.

 

특히 이 장로는 영적체험과 공동체의 섬김의 도를 본인의 삶의 터전에서 실천해 보이고 있다. 비파농장을 일구어 조합을 만들고 고향이 잘사는 고을이 되기를 기도하고 있는 것이다(비파농장 이야기는 다음호에 게재 예정).

 

이런 열정은 군 전역 후 교회활동에서도 주일학교 교사와 청년 회장직으로 섬기며 지역 복음화에도 남다른 열정을 쏟아 온 것이다.

 

부인인 박애순 권사는 나이 차이가 좀 있지만 신앙으로 하나님이 맺어준 잉꼬부부다.

 

이 장로가 결혼을 위해 선뵈러 다닐 때면 철없이 옆에 따라다니던 박 권사가 배우자가 될 줄은 꿈에도 생각을 아니했다는 고백이다.

 

당시 교회 활동을 하며 같이 활동하는 시간이 많아지게 되고 주위의 교우들은 둘이 결혼하는 걸로 아예 소문을 내놓고 있었으므로 결국은 한 이불속의 인생이 된 것이다.

 

물론 10살 이상의 나이차이로 부모님들의 반대도 있었지만 하나님은 두 사람을 하나로 삼아 주셨다고 한다.

 

1남 3녀로 복된 믿음의 가정공동체를 가꾸며 섬김의 교회, 지역사회 공동체를 꿈꾸는 이 장로는 오늘도 하나님 앞에 이기주의적인 신앙을 버리고 온 마을이, 완도와 신지면이 서로가 아끼며 섬기며 잘사는 복음의 섬이 되고자 하나님께 두 손을 모으고 있다

 

신지도에서 신춘섭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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