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부터 투신자살 시도까지…’ 고된 결혼생활 버텨낸 아내

선교필드 │ 열정으로 사역하는 이경철 선교사(6)

기독타임스 | 기사입력 2018/09/02 [16:44]

‘낙태부터 투신자살 시도까지…’ 고된 결혼생활 버텨낸 아내

선교필드 │ 열정으로 사역하는 이경철 선교사(6)

기독타임스 | 입력 : 2018/09/02 [16:44]

학생시절 하나님이 주신 첫 아이에 낙태하라는 어머니의 강압 못 이겨 결국 유산 시켜
자책감·무능한 남편 탓에 괴로워하던 아내,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의 기로에 서기도

 

“칼로 목을 그어대도 나는 필리피노를 사랑합니다.”

 

“I Love Philipino even though he slashed my neck with a knife!”

 

필리핀 앙겔레스 빵빵가 빈민촌에서 목에 칼로 베임을 받은 위험이 있었지만 아랑곳 하지 않고 목숨을 걸고 구령의 열정으로 선교에 여념이 없는 이경철 선교사의 선교이야기를 연재 한다 (편집자 주)

 

▲ 이경철 선교사     ©기독타임스

낙태하라고 보내온 돈

 

아내가 아이를 임신했다. 이 소식을 서울에 전했더니 당장 어머니의 호통 소리가 들려왔다. “아이를 낙태시켜라!” “왜요!” “학생이 애를 낳으면 어떻게 하냐! 지금 당장 낙태 비용을 보낼 테니 그렇게 해!”

 

 

이해할 수 없는 어머니! 그날 아내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세상에 이런 어머니가 어디 있다는 말인가?’ 도저히 상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이것이 한번이 아니었다. 첫아이를 임신했을 때 세상 물정 모르던 아내는 어머니의 강압으로, 두려움에 떨며 산부인과로 끌려가 낙태를 시켰다. 그리고 심신이 허약해 돌아온 아내에게 그 많은 옷을 손빨래를 시켰다. 밑으로 여동생들이 있었지만, 딸들에게는 손 하나 까딱하지 못하게 하고 아내만 일을 시키던 어머니다.

 

기독교인들도 낙태를 쉽게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은 살인죄에 해당하는 것이다. 한 사람의 생명을 죽이는 것이다. 살인자는 결코 하나님나라에 갈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이 주신 생명을 누가 감히 끊게 할 수가 있는가? 한 해에도 낙태로 배 속에서 생명을 잃는 아이들의 수가 너무 많아 통계가 불가능할 정도이다. 하나님이 정말 슬퍼하시는 일이다.

 

하나님의 뜻이 있어 세상에 보내졌는데 아이들을 죽인다는 것이 말이 되겠는가? 아내는 너무나 무서운 어머니의 강압에 손목 잡혀 아이를 유산시켰다. 좀 더 강하게 거부했으면 ‘그런 일이 없었을 텐데’ 자책하며 괴로워했다.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또 회개했는데도 그 일만 생각하면 눈물을 흘린다.

 

낙태를 시술했던 의사나 가담했던 자들은 분명 하나님이 심판하실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임신했으면 잘 낳아서 하나님의 뜻을 이뤄드려야 할 것이다.

 

아이 출산과 또 낙태 비용 송금

 

내가 3학년 때 미국에 어학연수를 다녀왔는데 아내가 말했다 “나 임신했어요!” “그래요!” 이 사실을 서울에 알렸더니 난리가 났다. “아니 학생이 무슨 임신이야! 당장 수술해!” 낙태 비용을 또 보내왔다.

 

나도 그때는 일반적인 세상 사람이었기 때문에 배 속 아이의 ‘생명 존중’같은 것은 생각하지 못했다. 그래서 어머니의 말에 동조했다. 병원에 가서 낙태를 알아보니 낙태를 하기에는 이미 시기가 늦어 산모가 위험할 수 있다는 소리를 들었다. 불안해하며 괴로워하는 아내를 안심시키며 과감히 아이를 낳기로 결정 내리고 부모님에게 낙태 불가 통보를 하였다.

 

그런데 모진 어려움을 겪고 태어난 아이가 바로 ‘믿음의 명문 가정을 이어갈 아들 성이’인 것이다. 그 아들을 낳고 얼마나 기뻤던지 학교 교정을 올라가면서 “아들이다, 아들이야!”하고 교정이 떠나가라 크게 외쳤다.

 

▲ 이경철 선교사 가족 딸 혜진이와 아들 기성이 그리고 정수지 사모.     © 기독타임스


많은 사람으로부터 축하를 받았다. 그러나 내가 아이를 낳자고 최종 결정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때 아이를 낙태시켰으면 어떻게 할 뻔했냐’고 아내로부터 가끔 그 문제로 질타를 받곤한다. 만약에 ‘이런 죄’를 회개 안 하고 죽게 되면 지옥에 가게 될 텐데, 거기서 영원히 영원토록 마귀에게 “어린아이 낙태시키고 온 나쁜 자구만!”하면서 받는 형벌이 클 것이다. 그러니 낙태 수술한 의사, 그리고 강요자들은 죽기 전에 하나님 앞에 회개해야하는데, 사람을 살인한 죄이기 때문에 용서가 쉽지 않을 것이다. 이 죄를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받지 못하고 죽으면 천국에 가지 못한다.

 

기독교인 산모들이 세상 사람처럼 아이를 유산시키는 것을 대수롭게 생 각하지 않는데 정말 용서받지 못할 죄를 하나님 앞에서 행하는 것이다. 낙태는 사람의 생명을 죽이는 것이다. 예전에 한국의 유명한 여가수였으며 지금은 모 교회 권사님이 지난날 미국에서 가수 생활할 때 자신의 아이를 낙태했는데 공개적으로 만인 앞에 죄를 고백했다. 그녀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니 젊은 날 하나님이 주신 생명을 죽인 것에 대한 괴로움을 평생 간직하고 살았던 것이다,

 

하나님이 부르시기 전에 뼈를 깎는 아픔으로 회개하면 하나님이 용서해 줄지도 모른다.

 

딸을 업고 마산바다 위에서 투신자살

 

이제 아내에게는 길이 없었다. 결혼만 하면 행복한 생활이 전개될 줄 알았는데 그런 것은 꿈속에서나 가능한 것이었고 결혼한 시집에서는 임신하기만 하면 윽박지르고 낙태하라고 하고, 사랑을 받고 또 받아도 모자랄 판인데, 사람 생명을 죽이는 것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자행하는 어머니를 바라보면서 희망을 잃어버렸던 것이다.

 

또 남편의 무능함을 생각지 않을 수 없었다. 만약에 집안에서의 불협화음이 있었다 할지라도 아내에게 좀 더 다가갔다면 아내가 받는 괴로움과 고통이 덜했을 텐데, 그러지 못하고 그런 극한 생각들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내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것은 전적인 나의 잘못이라 생각한다. 아내는 남편과 갓 난 여자아이, 그리고 배 속의 생명을 뒤로하고, 세상을

 

하직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내는 딸을 업고 마산바다를 향하여 가고 있었다. 오늘날에도 아내와 같은 사람들이 있을 줄 안다. 자살하면 분명 지옥 간다. 그러니 아무리 어렵고 고통스럽다 해도 조그만 참고 하나님을 만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 아내는 슬픈 모습으로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 뛰어내릴 준비를하고 있었다. 바다는 컴컴하고 마치 지옥과도 같았다. 자기로 인해 생긴 아이들과 함께 죽음의 문전에 서게 된 것이다. 자기의 첫 번째 생명을 강압에 의해 유산시켰고 이제는 여자아이인 딸과 또 배 속의 아이와 함께, 그러니 아내 혼자가 아니고 세 명인 셈이다. 세명이 동반 자살을 하려고 할 때, 어디선가 동네 아줌마가 나타났다. 직감적으로 아내가 바다에 뛰어들 것이라고 느꼈던 것이다. 아내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던 것이다. 세상에 살 이유가 전혀 없었다.

 

동네 아줌마의 설득이 시작됐다. “새댁! 왜 이러나! 어려워도 조금만 참지.” 그 모습은 바로 주님의 모습이었고 주님의 음성이었다. 만약에 그 아주머니를 만나지 못했다면 아내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것이다. 아내의 자살을 막기 위해 등장했던 천사와 같은 분이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는데 첫째가 천사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람, 둘째는 마귀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

 

우리는 어떤 편에 서야만 할 것인가? 어머니는 분명 사람의 모습이지만 정말 기본적인 사람의 모습도 안 되어 있었던 것이다. 우여곡절 속에 임신한 아이를 낳고 보니 아들이었다. 아내나 나는 이번에는 환영하겠지 생각하고 집에 갔다. 부모님 회갑이었다. 어머니가 말했다.

 

“아니 돈도 없는데 뭐하러 오냐!” 정말 뭐라고 대답할 말이 없었다. 내가 말했다.“아들을 낳았습니다.”

 

어머니는 아이를 쳐다보지도 않고 윗목에 방치하는 것이다. ‘유산시키고 또 낙태시키려는 어머니, 딸과 아들을 낳았어도 웃지 않는 어머니’ 내가 어렸을 때부터 이 문제 때문에 심한 상처를 받고 이날까지 살아왔는데 그 상처를 나의 아내와 자녀들에게도 똑같이 행하는 것이다. 아버지는 계셨지만 엄마에게는 아무 말 하지 못하고 끌려다니는 존재였다.

 

어머니 때문에 아내가 자살할 뻔했다. 그런 일이 벌어졌다면 세 사람이 죽는 것이다. 유산까지 합하면 4명이 될 것이다. 아직 부모가 생존해 계시지만 조심스럽게 이 부분에 대하여 접근하는 것은 기독교 안에 들어와 있지만, 아직도 마귀의 농간에 사로잡혀있는 사람들이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어서 속히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 자신을 돌아보기를 위함이고, 이것은 또 우리 믿는 사람들에게 교훈이 되어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글을 쓰는 것이다.

 

대학 다닐 때 ‘타임지’반 모임

 

당시 ‘타임지’공부하는 것이 유행이었다. 나는 대학 다니면서 이 모임에 참석하여 공부를 열심히 했다. 나중에는 타임반 부회장까지 했다. 3학년 때는 ‘총장상 영어 웅변대회’ 대상을 탔다. 영어 전공이 아닌 타 학과 학생이 이런 상을 타는 것은 처음이라고 했다. 그리고 3학년 때 미국 아이오와 주의 아이오와 대학에 어학연수를 갔다. 당시 생활이 어렵고 힘들었지만 학생으로서의 본분을 다하려고 애쓰던 시절이다.

 

아내가 어렵게 마련해준 기회를 헛되이 보내지 않기 위해 잠시 짬이 나는 시간에도 수많은 미국 현지인들을 만나 교제를 나누었다. 만날 때마다 영어 이름인 찰스를 알려 주었다. 저녁 식사 시간에 기숙사에 돌아와 한결 같이 “한국에서 온 찰스를 아느냐고 묻던데 도대체 찰스가 누구야” 그때 “바로 나요!” 했다. 다들 손뼉 치며 환호했다.

 

이 모든 과정은 하나님께서 선교사로 부르시려고 그 분야에 공부를 시키신 것이라고 본다.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이 아닌 것이 무엇이 있으랴!

 

바로크 가구와 전공 서적이 하루아침에 대림동에 살 때 홍수가 났다. 뚝방 근처에 살고 있었는데 배수관에 문제가 생겨 물이 역류한 것이다. 이런 일은 처음이라는 것이다. 그때 지붕까지 물에 잠길 정도였다. 사람들은 물을 피해 밖으로 나오는데 나는 집 안으로 들어갔다. 왜냐하면 집 안에는 모처럼 돈을 모아 구입한 최고급의 책장과 또한 제일 좋아하는 책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홍수 때에는 여기저기 설치된 전선 때문에 ‘감전사’될 수 있는 상황인데도 ‘바로크’를 생각하며 목숨을 걸었던 것이다. 지지직거리는 전기 소리에도 아랑곳 않고 물살을 헤치며 그것을 들고 나왔다. 지금 생각하니 전기에 감전 안 된 것이 기적이다. 그 가구를 물속에서 가지고 나올 때는 몰랐는데 물이 빠지니까 허리에 무리가 갔다. 훗날 생각했다. ‘바로크가 중요한가? 내 목숨이 중요한가?’ 그러나 그때는 그것이 중요했다. 귀중히 여기던 책들이 물에 잠긴 것을 안타까워하며 밖으로 건져냈다.

 

돗자리를 깔고 책들을 널어놨다. 나는 흐뭇했다. ‘이 정도 건진 것이 다행

 

이다.’ 잘 말리기만 하면 책을 읽을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책을 말리고 있는 중에 어디를 다녀왔는데 돌아와서 보니 뭔가 허전한 느낌이 들었다. 책이 모두 없어졌다. 당황해하며 마침 곁에 있던 이모에게 말했다.

 

“이모! 책들 혹시 못 보았나요?”

 

“무슨 책?”

 

“여기에 널려있던 책들 말예요!”

 

“어떤 사람이 가져갔어!”

 

“가져가다니오!”

 

“어떤 사람이 책을 가지고 가기에, 왜 가져가냐고 물었더니 ‘책 주인이 가져가라’고 해서 가져가는 것이라고 하던데” 미치고 펄쩍 뛸 일이었다. 이모는 정확히 확인해보지도 않고 도둑놈을 보낸 것이다. 혹시나 도둑이 주변에 있나 부지런히 찾아봤으나 이미 멀리 도망갔는지 눈에 보이지 않았다. 아마 헌책방에 몇 푼 안 주고 팔아 버렸을 것이다. 너무나 허탈해졌다. 군대 갈 때도 배낭에 책을 가지고 갔던 내가 아니던가?

 

그리고 손때 묻은 중요한 전공 서적들이 순식간에 모두 사라져 버린 것이다. 책 하나하나에 깊은 사연들이 있다. 가난한 살림에 먹을 것도 제대로 먹지 못해가며 구입한 책들인데 그런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이다. 전공 서적을 다 잃어버리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무리 귀중히 여기는 바로크 책장과 또 귀중한 서적들이라도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구나.’

 

이일을 그때뿐만 아니고 훗날 하나님 앞에서도 깊은 교훈으로 삼고 있다. 우리가 제일 귀중히 여겨서, 낮이나 밤이나 보초 서고 지킨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함께해 주시지 않는다면 그것은 허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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