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어려움, 그 속에도 하나님의 깊으신 뜻은 있습니다”

선교필드 │ 열정으로 사역하는 이경철 선교사(7)

기독타임스 | 기사입력 2018/09/19 [14:05]

“삶의 어려움, 그 속에도 하나님의 깊으신 뜻은 있습니다”

선교필드 │ 열정으로 사역하는 이경철 선교사(7)

기독타임스 | 입력 : 2018/09/19 [14:05]

가시밭길 이직 생활·아버지의 증권투자 실패·집에 붙은 빨간 딱지 등

끊이지 않던 고난의 순간 … 주님의 섭리이자 사인이었음을 깨달아

 

 

“칼로 목을 그어대도 나는 필리피노를 사랑합니다.”

 

“I Love Philipino even though he slashed my neck with a knife!”

 

필리핀 앙겔레스 빵빵가 빈민촌에서 목에 칼로 베임을 받은 위험이 있었지만 아랑곳 하지 않고 목숨을 걸고 구령의 열정으로 선교에 여념이 없는 이경철 선교사의 선교이야기를 연재 한다 (편집자 주)

 

▲ 이경철 선교사     ©기독타임스

하나님의 작품, 아버지 재산을 모두 걷어감

 
대학을 졸업하기 직전에 치열한 경쟁을 뚫고 삼성공조 주식회사에 들어갔다. 거기서 무역부에 근무했다. 취직하기가 쉽지 않은 시절 선망의 대상이던 기업체 무역부에 들어가 같은 학생들이 부러워하는 위치에 있는 바람에 아내의 마음이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4년 후에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주) 콤텍시스템 회사로 옮겼다. 그 회사는 모토로라 전용 수입처였다. 그 회사는 모뎀으로 출발한 회사였다. 즉 통신계 통의 선두 주자였다. 내 인생에서 커다란 위기가 닥쳤다. 증권을 하다가 2천만 원을 날린 것이다. 그래서 봉천동에 3층 빌딩을 가지고 계신 아버지를 찾아가 말했다.

 
“아버지!”

 
“왜 왔냐!”

 
“다름이 아니라 제가 증권을 하다가 2천만 원 날렸습니다. 보다시피 저희는 돈이 없고, 해결한 방법이 없습니다.”

 
“나는 너를 도와줄 수 없다.” ‘냉정하게 거절하는 아버지, 이런 분이 내 아버지였다는 말인가?’를 생각했다. 동생들은 어려울 때 아버지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은 것을 알고 있다. 물론 아버지가 나를 사랑하지만, 어머니의 영향 아래 있기 때문에 나에 대한 ‘긍휼’을 베풀지 못하는 것을 알고 있다.

 
그때 나도 모르게 증권 얘기를 했다. 증권으로 망했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해서는 안 되는 상황이었다. 아버지에게 말했다. “아버지! 나를 소개했던 사람이. 지금 시세가 바닥이랍니다. 지금 증권에 투자하시면 이익을 많이 남길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래!”

 
내 말이 솔깃해진 것이다. 그래서 그 사람을 소개했다. 그런데 6개월 후에 들려오는 소리가 아버지가 망했다는 것이다. 소개해준 사람을 통해 그쪽에 발을 들여놨고 봉천동 건물이 당시 3억 정도 했는데 그것을 가지고 증권에 투자했다가. 한순간에 집을 날린 것이다. 집안은 공황 상태에 이르렀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제정신이 아니다.

 
봉천동 길가 옆에 있는 그 집을 무기 삼아 우리에게 가진 심리적 학대를 했는데 하루아침에 알거지가 되었다. 분명 아버지와 어머니는 눈에 초점을 잃고 방황하는 기세가 역력했다. 당시에는 마음 아파했는데 돌이켜서 지난날을생각할 때 아버지가 집을 날리게 된 것은 하나님의 작품인 것이 명백해졌다. 증권에 2천만 원 날렸을 때 아버지가 갚아주고, 아버지가 증권에 투자 안 했다면 내가 하나님 앞에 돌아올 수 있었겠는가? 우리 집을 망하게 하신 것은, 봉천동의 빌딩보다 수천만 배 귀한 나의 영혼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작품이라 생각하니 너무나 감사하고 고맙다. 그러나 그때는 몰랐었다.

 

며느리 잘못 들어와 집안 망했다

 
생명같이 여기던 봉천동 집이 날아가자 그 화살이 아내에게 날아왔다. ‘며느리가 집안에 잘못 들어와 망하게 되었다’는 억지 주장이다. 아내는 이일로 점점 겪기 힘든 상황으로 몰리게 된다. 여자가 힘이 없던 조선 시대에는 ‘이런 말’이 통했었다.

 
아내가 임신했다고 낙태까지 시키며, 살인죄에 가담한 분이 이제는 ‘집안이 망한 것은 아내 때문에 그렇다’고 억지 주장을 편 것이다. 정말 아내는 예수 믿지 않는 가정에 시집와 갖은 수모를 겪으며 살았고, 그 여파로 극단적인 생각도 했던 사람이 아니던가? 사람들은 일이 잘 안 풀리면 ‘누구 때문에 그렇다’고 변명을 하기 좋아한다. 그러나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면 하나님의 섭리가 아닌 것이 없다. ‘망하게 하신 이도 하나님이시고 흥하게 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다.

 
우리가 ‘어떤 일’이 전개되었을 때, 깊으신 ‘그분의 뜻’이 있다는 것이다. 혹독한 시련 때문에 아내가 예배당을 다시 찾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시집가기 전에는 그렇게 열심히 신앙생활 하던 ‘하나님의 딸’이 불신자 집안에 와서 ‘하나님 없는 것’같이 살아가니, 주님이 얼마나 마음이 아프셨겠는가 이제는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는 ‘하나님의 때’가 왔던 것이다. 아내가 우리 집안에 잘 들어와서 내 영혼이 구원을 받고, 또 복음을 모르고 죽어가는 자들의 구원자로 쓰임 받는 목사요 선교사의 아내가 되었으니, 이보다 더 귀하고 복된 것이 있겠는가 아내는 우리 집안을 구원하려고 보내신 믿음의 자매들이 기도 많이 하고, 믿지 않는 가정의 선교사로 파송 받아 그 가정을 구원시킨다면 하나님께 받는 상이 클 것이다. 이슬람 지역에 가서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하는 기독교인들도 있지 않은가. 어떻게 믿음의 자매들이 양손의 떡을 쥐는 결혼에만 관심을 가질 것인가? 주님이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렸기 때문에 우리가 구원을 받는 것이다. 우리의 희생이 없다면 이 역시 구원받을 사람이 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인

 
대학을 졸업하고 들어간 회사에서 직장 생활을 잘하고 있는데 용산공고 선배로부터 같이 일하자고 제안이 왔다. 다들 반대를 했다. 다니던 회사에서도 아내도 모두 반대를 했다. 그러는 와중에 집에서 어항에 물을 갈아주 어야 할 상황이었다. 그때가 겨울이었다. 어항에 뜨거운 물을 붓고 찬물로 섞어야 했다.

 
그런데 방 안 밑바닥 이불에 걸리는 바람에, 몸의 중심을 잃고 그 뜨거운 물이 다리에 쏟아지게 되었다. 그래서 병원에 입원도 했다. 당시 다른 회사에 나를 부르고 있을 때였다. 그 회사에 간 결과 처음에는 승진도하고 좋아 보이는 듯 했지만 처음 직장보다는 못했고, 거기 다니면서 2천만 원도 날리는 결과를 가져왔다. 물론 이것은 하나님의 큰 틀에서 나를 구속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이 분명히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하나님으로부터 ‘어떤 사인’이 있었던 것이다.

 

▲ 이경철 선교사는 결혼초기의 어려움을 통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늘 감사하며 선교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     © 기독타임스


우리가 신앙생활 하면서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사인을 무시하면 안 된다. 분명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여러 각도로 깨우치시고 알려주신다. 그것은 우리가 기도생활을 할 때 일반적으로 알게 된다. 기도하는 성도들은 더욱 민감하게 ‘주님의 뜻’을 발견하기 때문에 성공적인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 그러나 기독교인이지만 기도 생활을 하지 않으면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심각한 사인’을 지나쳐 버릴 수 있다. 즉 기도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내시는 사인을 빨리 확인할 수 있는 지름길이다.

 

하나님의 위로, 올백 엄마

 
큰딸 진이가 초등학교 1학년 때 일이다. 당시 가정은 먹구름으로 가득차 있을 때고 아내는 희망을 둘 곳이 없을 때다. 대림동의 신영초등학교를 다녔는데 엄마들의 치맛바람이 센 곳이었다. 학부모의 관심사는 ‘누가 올백이 될 것이냐’였다. 엄마들은 자기 아이가 그런 점수를 받기 위해 과외도 시키며 모든 수단을 다 부렸다.

 
입학해서 첫 번째 시험에서 딸이 올백을 받은 것이다. 이것은 기적이었다. 다른 엄마들이 놀랐을 것이다. 잘사는 가정이 많이 있었는데도 영광은 우리에게 돌아왔다. 내가 좋은 직장에 다닐 때가 있었지만, 지금은 아무것도 없어 교육을 제대로 시키지 못하는 형편이었다. 마음만 아팠던 날들인데 딸이 혼자 올백을 맞으니 기쁨이 컸다. 그때는 내가 신앙생활 초기였다.

 
그 후로 우리 집사람이 동네를 다니면, 대림동 주변에 소문이 나서 사람들이 이렇게 불렀다.

 
“올백, 엄마!! 올백 엄마!”

 
“아, 네!”

 
학교에 가면 선생님들이,

 
“올백 엄마! 오셨어요!”

 
아내가 딸로 인하여 기운이 샘솟는듯했다. 집안의 상황이 절벽같이 암울하고 고통스러웠는데, 하나님께서 딸을 통하여 위로하고 격려했다. 죽음과 같은 시련이 왔지만 위로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에 감사했다. 구약의 욥이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죽음과 같은 시련의 날들을 겪고 있지만 그 고통들은 욥을 죽이려는 목적이 아니요 큰 축복을 주시려는 하나님의 뜻이 있었던 것이다.

 

두 아이와 신기루 미술 학원

 
아이들이 학원이라도 다니며 교육을 시켜야 하는데 집에 돈이 없어 마음만 아팠다. 마침 당시 아이들이 가고 싶어 하는 대방동의 신기루 학원에서 공부할 수 있게 되었다. 용산공고 선배가 운영하는 곳이었는데 우리가정 형편과 딸아이의 성적 등이 반영되어 학원에서 돕기로 했다, 또 공부잘하는 딸 때문에 학원 광고 효과도 있어서 다닌 학생들도 많았다.

 
과외 한번 시키기 힘든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그곳으로 인도해서 미술뿐만 아니라 여러 학과목을 배울 수 있게 되었다. 그곳에서 아이들이 여러분야의 기초를 잘 배우게 되었다. 우리를 도와준 선배도 고맙지만 그 뒤에는 주님이 손길이 우리 아이들과 가정에 있었음을 부인하지 않는다. 어려운 시절에 아이들이 당당하게 공부할 수 있어서 우리 부부는 마음이 든든했다.

 

빨간 딱지, 성이네 집

 
성남의 ‘전설의 고향’ 같은 집에서 살고 있는데 내가 진 빚이 있어서 별가치도 없는 물건들조차 ‘빨간 딱지’를 붙여놓았다. 사람들이 방문하면 그 딱지를 안 보이게 하는 것이 나의 주요한 임무중 하나였다. 이런 생활을 하고 있는데 빚쟁이에게 전화가 온다. 아들이 전화를 받았다.

 
“야! 아버지 있냐!”

 
아들이 대답했다.

 
“우리 아버지 밖에 나가고 없어요!”

 
아이의 거짓말을 들을 때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다. 아빠 잘못 만나 저렇게 초등학교 아이가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이것 또한 강하게 나를 훈련시키려는 하나님의 뜻이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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