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 중심적·공동체 친화적인 지혜로운 선교전략 절실

4.캄보디아의 복음화를 위해

기독타임스 | 기사입력 2018/10/05 [17:36]

관계 중심적·공동체 친화적인 지혜로운 선교전략 절실

4.캄보디아의 복음화를 위해

기독타임스 | 입력 : 2018/10/05 [17:36]

1990년 캄보디아 정부의 공식 허가 이후 매년 200~300% 성장해
불교적 뿌리가 깊은 만큼 교회·지역 공동체 중심의 전략 강화해야

 

 

캄보디아 왕국 (Kingdom of Cambodia)은 캄보디아의 공식 명칭이다.

 

소승 불교인이 95%다. 이거 하나만 보더라도 복음이 얼마나 필요한 나라인지 직감이 온다. 땅 끝까지 이르러 증인되라는 주의 음성을 듣는다면 기도로 후원하든지 가야할 나라라고 본다. 본보는 이런 캄보디아를 조명해 보며 선교의 불씨를 지펴가기를 기도하는 맘으로 연재로 기획한다. 특히 킬링필드는 ‘비이성의 세계사(정찬일)’를 중심으로 정리해 본다. 뚜얼슬렝은 프놈펜 시내 남쪽 러시안마켓 가는 도중에 있다. 원래 1962년 세운 뚜얼 스바이 프레이(Toul Svay Prey) 고등학교였다. 1975년 4월 17일 폴 포트가 이끄는 크메르 루즈(KR)가 프놈펜을 함락하자 이 학교는 폴 포트의 21비밀 수용소로 개조되었다. 그리고 이런 감옥이 여러 개 만들어졌다. 캄포디아 전역에 대량학살이 이루어진 킬링필드가 19,000 여개가 있다. 캄보디아의 복음화를 위한 마지막 연재를 캄보디아 종교부령의 발표한 내용을 게재하으로 마무리 짓은다. (편집자 주)

 

캄보디아의 복음화를 위해

 

캄보디아 종교부령의 발표에 대한 역사, 정치, 문화적 배경에 대하여 최근 발표한 종교성의 종교 활동 대한 제한 사항은 상당히 충격적이다. 종교 활동에 대한 공식적인 문제를 지적하고 있고, 특히 기독교의 활동에 대한 제재가 확연히 들어나 있다고 보여 진다. 이미 2003년 1월 나온 종교 활동에 관한 지침서에 언급한 내용을 다시 구체적으로 사례를 들어서 설명하고, 또 시행되지 않을 경우 강한 제재를 가하겠다고 선언하고 있다. 여기서 종교 활동에 대한 제재 지침이 재천명되는 것과 기독교에 대한 제한 지침이 강화된 배경이 무엇인지 역사적, 정치적, 종교적, 사회적, 그리고 문화적 측면에서 간단히 살펴보려고 한다.

 

▲ 프놈펜에는 화려한 왕궁이 있지만 역사는 눈물로 얼룩진 현장이 많다     © 기독타임스


역사적 배경

 

개신교 선교 역사가 시작되는 1923년부터 복음전도와 교회개척, 성경번역, 및 신학교 사역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선교 활동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복음전도 활동이 정치적, 혹은 사회적, 종교적 이유로 여러 형태로 제한 받았다. 

 
1928년에 모니봉왕(King Monivong)은 복음전도 금지 칙령을 발표했다. 그리고 성경학교 학생들은 감옥에 가뒀고, 끄라쩨(Kratie) 지방에서는 선교사들이 쫓겨났다.

 
1945년에서 캄보디아가 독립하기 전 1953년까지 반프랑스 식민지 운동이 공산주의 세력과 함께 하여 많은 가톨릭 신자들이 순교를 당하고, 개신교 순교자가 발생했다.

 
1965년에는 시하누크 왕자(Prince Sihanouk)가 반 미국 노선을 취하면서, 1974-79년에 폴폿/크메르 루즈군 점령 시대에는 모든 종교가 위협을 받고, 종교 활동이 중단되었다.

 

1980-1989년 구소련과 베트남 점령시기 동안 신자들은 피난민 수용소로 피난하거나 지하교회에서 생존했다.

 
2003년 1월에 발표한 종교성의 종교 활동에 대한 지침서를 통해서 기독교의 활동에 불편 심기를 드러냈다.

 

▲ 농업국인 캄보디아는 세계최빈국으로 알려져 있다.     © 기독타임스


2007년 6월  종교성의 종교 활동에 대한 공문서를 통해서 기독교의 활동을 제한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복음 전도 활동에 대한 제재가 있어왔다. 시대 상황적인 요인이나 정치지도부의 노선에 따른 타종교에 대한 반응일 것이다.

 
정치적-사회적 배경

 

캄보디아 사회를 보는 입장이 첫째, 1)전쟁과 시민분쟁의 영향으로 불안정한 사회로 보는 입장이 있다. 이는 평화(peace)와 화해(reconciliation)와 재건(reconstruction)이 필요한 사회이다. 둘째, 후기 식민 사회(post-colonial society)로 보는 입장이다. 이는 정체성의 확립과 경제, 사회, 정치적 제도 건설에 집중하는 사회이라는 것이다. 셋째는 후기 혁명 사회(Post-Revolutionary Society)라 보는 입장이다. 폴폿 통치로 인한 모든 제도와 자원의 파괴로 인하여 모든 영역의 재건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현재 캄보디아 사회는 후기 혁명 사회(Post-Revolutionary Society By Basil Fernando)라 보는 입장이 유력하다. 새로운 재건이라는 목표 각 영역의 제도 건설이 이뤄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많은 갈등과 긴장이 발생한다.

 
전통적인 캄보디아 사회는 3 개 기둥인 왕(King), 종교(religion), 가족(family)을 중시 여겼다. 그 동안 왕은 파워게임을 통해서 왕의 권력을 강화하려 했으나 1993년 9월 헌법의 명시로 ‘왕은 군림하나 통치하지 않는다(The King shall reign but not rule)’ 조항에 제한을 받았다. 그러나 헌법에 명시한 것처럼 왕은 여전히 온 국민의 삶의 중심이다.

 

▲ 대부분 가정집이나 회사등 입구에는 지주신 조상신을 숭배하는 신당이 있다.     © 기독타임스

 

불교는 정치적으로 종교의 지위를 가지고 엄청난 힘을 발휘하고 있다. 여전히 불교와 사원은 각 지역의 모든 정신적, 영적, 도덕적 뿌리가 되고 있다.

 
기독교는 소수(Minority) 그룹으로 캄보디아의 정치적-사회적 헤게모니(hegemony)의 장에 있지 못한다. 불교의 강력한 대항에 물러 설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역사적으로 정치적-사회적 상황에 따라 선교 활동은 제한을 받아 왔다. 기독교가 새로운 각도에서 정치-사회에 영향력을 가져야 할 상황이다.   

 

종교적-문화적 배경

 
1990년 기독교가 공식 예배 허가를 받게 되면서 15년 동안의 절망기를 거쳐서 정부로부터 기독교의 존재를 다시 인식 받았다. 그 이후 기독교는 매년 200-300% 성장을 해왔고, 교회 개척과 기독교 사역이 활발하게 진행되어 왔다.

 
불교는 1989년 이미 다시 국교로 천명되었고, 그 세력을 확장해 왔다. 폴폿 괴뢰정부 때에 불교도 예외 없이 약25,000명의 승려(Monks)가 살해당했고, 많은 절이 파괴되었다. 현재 다시 5,000개(혹은 7,000개) 가까운 절이 복구되었고, 엄청난 속도로 절은 부를 축적하고 있다.

 

▲ 앙코를 와트는 캄보디아의 대표적인 역사 유물이다.     © 기독타임스


그 동안 불교는 국교로서 절을 중심으로 지역사회의 공동체의 초석(Wat-Based Community)이 되어 왔다. 그러나 사회 환경의 변화와 타종교의 활발한 활동으로 그 기초 공동체가 무너지고, 종교적인 전통의식과 활동이 약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불교의 성장이 이뤄지고 있고, 각 사원이 부를 축적하지만 타종교, 특히 기독교에 비해 미약하고, 기독교는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불교는 신앙 교리가 수동적이고, 절기에 따른 행사 중심의 활동이라면, 기독교는  매 주간 모임과 적극적인 복음 전도 활동을 통해서 종교 활동이 진행되고 있다. 일부 기독교 단체와 교회들은 지역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매우 적극적인 복음 활동을 하고 있다. 

 
기독교의 교리는 전통 문화의 일반적인 행사와 예식에 정면으로 충돌하는 부분이 있다.   

 
종교적-문화적인 면에서 기독교의 교리와 복음 활동은 많은 영역에서 충돌할 확률이 높다.

 

▲ 캄보디아역사중 킬링필드 최고의 아픔의 현장으로 보인다.     © 기독타임스


종교성의 타종교, 특히 기독교에 대한 제재 지침은 캄보디아에서의 기독교 선교전략의 새로운 전환(new paradigm shift) 요구한다.

 
불교는 풀뿌리 종교(Grass-Rooted Religion)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 급하고 적극적인 선교 전략은 불교의 침묵에 시행착오를 하게 되고, 그 좋은 열매를 갖지 못할 수 있다.

 

저수지에 맑고 시원한 물이 스며들어 채우듯, 지역 공동체에 들어가 지역 공동체와 좋은 관계를 맺으며, 보다 지혜롭게 관계 중심적, 공동체 친화적 전략을 구사하면 어떨까. 공격적이고 선교지가 아닌 자국 중심적 선교전략보다 교회와 지역 공동체 중심의 선교전략(Church and Local Community-Based Mission Strategy)을 강화해야 할 때라 본다.

 

글 / 공베드로 선교사

사진 / 신춘섭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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