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복음주의자들의 분발로 선교의 주도권을 회복하여 자유주의 선교사들이 철수한 곳에 복음주의 선교사들을 다시 파송하며 더 나아가 미전도 지역에 선교사들을 파송하려고 힘을 쓰고 있다.
동시에 과거 선교의 시행착오를 반성하며 새로운 선교방법을 개발하여 변화하는 시대적 상황에 대처하려고 몸부림을 치고 있다.
그러나 앞에서 말했듯이 범신론적 신관, 인본주의적 자유주의적 구원론, 종교다원론, 세속주의 등 당면문제에 대한 효과적이고 충분한 힘을 가진 선교신학이 요청되고 있다.
더 강력한 역토착화 역상황화 작업이 요청되고 있다.
어떻게 불교 내지 불교적 사상을 서양화한 뉴에이지운동 등에 대처할 것인가? 변선환 교수가 빠져들어갔던 인도교적 성령운동, 종교다원론은 어떻게 훼파할 것인가?
자유주의자, 이단자들을 교권적으로 출교하고 비난하는 것으로만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비난해도, 출교해도 저들은 나가서 독립해서 저들의 주장과 활동을 계속하는 것이다.
결국 종합해서 보면 오늘의 문제는 항상 그러했듯이 기독교의 절대성을 어떻게 설득력 있게 확립하느냐, 어떻게 현대인들에게 저들의 그릇됨을 철저히 논박하여 유일신 창조주 하나님을 증거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 구세주이심을 확산시킬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기독교의 절대성 시론 :
사랑의 변증법
기독교의 절대성은 유일하신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만을 믿고 섬기며 그 외에 다른 우상들, 모든 신 숭배를 배격하는 것이며 유일한 구원의 방법으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는 외에 다른 모든 인본 종교들을 구원의 길로서 믿는 신앙을 배격하는 배타주의를 뜻한다.
이 같은 성서의 계시진리를 직접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자들에게 성서적 참 진리를 어떻게 설득시켜 믿게 하는가? 이것이 역사적으로 선교신학의 문제였으며 동시에 또한 오늘의 현대 선교신학의 문제다. 앞서 말한 대로 진정한 선교는 개종작업이다.
성경을 참 진리로 증거하는 작업은 먼저 참 하나님에 대한 증거가 전제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또한 선교적 작업을 성령의 역사로 맡겨버리고 우리의 선교적 노력을 저버리는 것은 선교신학을 포기하는 것이요, 우리에게 주어진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 아닐 수 없다. 우리들의 선교적 책임은 복음선포와 더불어 선교신학의 개발, 선교방법의 개발까지도 포함하는 것이다.
선교신학이 부딪치는 문제는 과거나 현재나 같은 것이었으나 그 타개방법은 그 문제가 부딪치는 지역 문화에 따라, 시대에 따라 개발되었고 오늘 현재, 각 지역의 문화에 따라 잘 개발되어야 하는 것이다. 주일학교, 청소년부를 마치고 대학에 가서 신앙을 떠나는 것은 적절한 신앙의 토대를 쌓아주지 못하고 권위적으로 덮고 넘어가거나 우민정책과 같이 우교인 정책적 감정신앙으로 우회하기 때문이다.
억눌렸던 회의는 감정이 식으면 되살아나 신앙의 시력을 꺾어버리는 것이다. 신앙의 회의는 정면으로 돌파해야 하는 것이다. 믿음의 발생과 유지발전(강하고 깊게, 높게, 넓게)(엡3:19)은 지·정·의뿐 아니라 가능한 모든 수단이 종합적으로 균형있게 효과적으로 작용되어야 한다. 유용한 상징들도 효과적으로 사용되어야 한다.
과거에는 과거의 선교신학이, 좁게는 변증학이 그 임무를 크게 담당하였다. 이제 오늘의 세계가 하나의 문화권으로 급변해 가는 현 시점에서 전 세계 선교일선, 목회일선에서 부딪치고 있는 선교적 장애문제를 극복할 수 있기 위해 새로운 다양한 선교신학 수립이 요청되고 있다. 과학분야, 심리학분야, 사회학분야, 인류학분야, 교육학분야, 정치 사회 경제 분야, 철학, 종교학 분야, 매스컴 분야, 그 외에 영성문제, 치유문제, 어린이 문제, 노인문제, 청소년문제, 장애자문제 등 전문분야에서 부딪치는 전문적이고 현실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그 분야의 전문가들이 동원되어 연구되어야 할 것이다. <저작권자 ⓒ 진리의 나팔수 기독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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