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성지순례21 - 브엘세바1] 이브라함과 이삭-아비멜렉간 맹세의 우물 있는 브엘세바

사울 때 견고한 성벽 쌓으며 요새화된 도시로 거듭 그러나 하나님의 책망 받아 ‘저주받은 도시’로 전락

기독타임스 | 기사입력 2018/12/20 [09:59]

[기획특집: 성지순례21 - 브엘세바1] 이브라함과 이삭-아비멜렉간 맹세의 우물 있는 브엘세바

사울 때 견고한 성벽 쌓으며 요새화된 도시로 거듭 그러나 하나님의 책망 받아 ‘저주받은 도시’로 전락

기독타임스 | 입력 : 2018/12/20 [09:59]

▲ 텔 브엘세바의 발굴현장과 동쪽 도시화된 브엘세바     © 기독타임스


기원전 1900년경,메소포타미아의 고대도시 우르에 살던 아브람에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다.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창세기 12:1~2)

 

5천년 전 인류 최초로 문자를 발명하고 찬란한 문명을 꽃피웠던 수메르문화의 중심지 우르에서 셈족의 장로인 아버지 데라,형 나홀,동생 하란과 함께 풍요로운 생활을 하고 있던 아브람은 이 불가사의한 음성에 이끌려 우르를 떠났다.

 

오랜 여행 끝에 아브람이 닿은 곳이 지금의 이스라엘 땅 이다.아브람은 그 뒤 하나님으로부터 ‘열국의 아버지’라는 뜻의 아브라함이라는 이름을 받는다.

 

오늘날 이스라엘에서 아브라함의 자취를 찾을 수 있는 곳은 세겜 헤브론과 브엘세바다.

 

세겜은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 들어와 처음 장막을 친 곳이며 헤브론은 그가 기근을 피해 애굽에 갔다 온 뒤 장막을 치고 아내 사라를 장사 지낸 곳이다.

 

▲ 야곱의 우물     © 기독타임스


맹세의 우물/일곱 개의 우물

 

브엘세바는 7개의 샘이라는 히브리 어원을 갖고 있다. 또한 맹세의 샘이라는 뜻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브엘세바의 어원을 아브라함과 아비멜렉 사이의 언약 ‘창 21:31)에서 찾고 있고, 또한 이삭과 아비멜렉의 언약(창 26:33) 때문이라고도 한다.

 

아브라함과 이삭은 그랄 지방 아비멜렉의 자손들과 우물에 대한 시비가 붙었다. 아브라함과 이삭의 우물들을 빼앗는 아비멜렉의 자손들 때문에 발생한 싸움이 마무리되면서 이 장소는 우물을 판 증거에 대한 맹세로 혹은 더 이상 싸움이 없는 것에 대한 맹세로 브엘세바라고 불렀다.

 

이때 아브라함의 일곱 양이 언급되며 이삭은 일곱 개의 우물을 팠다. 어찌됐든 이 이름은 브엘세바가 물이 풍부한 장소였다는 것을 말해 준다.

 

수자원이 풍부하다는 조건은 수천 년 동안 사람들이 살 수 있었다는 결과를 이야기해 준다. 실제로 텔 세바에서는 주전 4000년 동석 병용기 시대부터의 유물들이 발견되었으며 수많은 우물들과 물 저장고들도 함께 발견되었다.

 

요새화된 도시

 

처음 브엘세바를 요새화하고 성벽을 쌓은 이는 사울이었을 것이다. 사울은 이스라엘 영역 사방의 적들을 몰아내었는데 남방의 아말렉도 물리쳤다(삼상 14:47∼48, 15:2∼9)

 

사울이 건설한 도시는 후대에 가면서 좀 더 요새화된 도시적 성격을 드러냈다. 브엘세바 도시의 모습은 마치 현대의 잘 구획된 도시처럼 도로가 뻗어 있으며 도시 외곽 전체를 가옥들로 연결하여 마치 성벽을 이루는 것처럼 건설되었다. 도시 내부는 행정구역과 상업적 지역, 군사 지역 등 필요에 따라 잘 구분되어 있었다.

 

▲ 브엘세바     © 기독타임스


도로에는 마치 현대 도로 바닥에 깔려 있는 것 같은 하수도가 있었다. 성문 입구 왼쪽에는 우물이 있는데 아브라함과 이삭의 우물을 연상케 한다. 뿐만 아니라 최근 발굴에 의하면 브엘세바는 바닥을 파고 돌을 쌓아 건설한 거대한 물 저장고도 있었다.

 

성문은 돌로 기초를 쌓고 진흙 벽돌을 그 위에 쌓고 양쪽에 탑을 만들어 도시를 보호하도록 하였다. 도시의 중앙에는 다른 곳보다 높게 쌓아 플랫폼을 만들고 그 위에 세워진 행정건물이 있어 도시를 통치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추었다.

 

더불어 기둥들이 두 줄로 길게 세워져 있는 독특한 건물들이 발견되었다. 이 건물들은 아직도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데 시장이나 곡식 저장고로 해석하는 학자들이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학자들은 마구간으로 해석하고 있다.

 

저주 받은 도시

 

그러나 흥미로운 것은 브엘세바가 여호와의 책망을 받은 도시였다는 것이다. 요시야가 이스라엘의 성전에서 율법서를 찾아 이스라엘 민족이 전혀 그 말씀대로 행하지 않고 있음을 깨닫고 종교개혁을 단행했을 때 그는 게바에서 브엘세바까지 제사장들이 분향하던 산당을 없애버렸다(왕하 23:8)

 

아모스도 브엘세바의 종교적 타락을 이야기하고 있다. 아모스는 이스라엘이 금송아지가 있어 종교적으로 타락했던 벧엘을 찾는 것처럼 브엘세바로 나아가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암 5:5). 또한 사마리아의 우상을 두고 맹세하거나 단의 신들이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듯이 브엘세바를 두고 맹세하면 죽으리라고 예언하고 있다(암 8:14)

 

결국 남유다의 브엘세바는 북왕국 이스라엘이 가나안의 이방신을 섬겼던 것처럼 심각한 종교적인 문제를 갖고 있었다.

 

실제로 브엘세바에서는 이러한 종교적 상황을 설명할 수 있는 유물이 발견되었다. 주전 8세기 후반∼7세기 초반에 건설된 곡식 저장고의 벽에서는 뿔 모양으로 생긴 돌 3개가 발견되었다.

 

이 돌들은 네모반듯하게 벽돌을 깎아 쌓았던 이스라엘의 건축양식에는 어울리지 않는 것으로 학자들은 이전시대에 다른 용도로 사용되었던 돌들이 저장고의 벽돌로 재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이 뿔들과 관련이 있어 보이는 돌들을 저장고의 벽에서 뽑아내어 쌓아보았더니 1.5m 높이의 제단이 완성되었다. 이스라엘에서 뿔 달린 제단을 발견하는 것은 놀라운 것은 아니었다. 성서는 이미 이스라엘의 성전과 성막에 뿔 달린 제단이 있었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브엘세바는 주전 586년 바벨론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었지만 이스라엘이 포로 생활에서 돌아오면서 다시 작은 도시가 건설되었다. 로마시대에는 네게브와 요단강 동쪽편에 거주했던 나바티안의 공격에 맞서서 싸우기도 했다. 또한 주후 7세기 아랍의 이스라엘 정복에 저항하기도 했지만 이후에는 아무도 살지 않는 버려진 도시가 되었다(다음호에 계속)

 

브엘세바서 / 신춘섭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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