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집사는 주의 종감이야” 거룩한 부르심에 시작한 목회

선교필드 │ 열정으로 사역하는 이경철 선교사(10)

기독타임스 | 기사입력 2019/01/09 [14:50]

“이 집사는 주의 종감이야” 거룩한 부르심에 시작한 목회

선교필드 │ 열정으로 사역하는 이경철 선교사(10)

기독타임스 | 입력 : 2019/01/09 [14:50]

“칼로 목을 그어대도 나는 필리피노를 사랑합니다.”
“I Love Philipino even though he slashed my neck with a knife!”
필리핀 앙겔레스 빵빵가 빈민촌에서 목에 칼로 베임을 받은 위험이 있었지만 아랑곳 하지 않고 목숨을 걸고
구령의 열정으로 선교에 여념이 없는 이경철 선교사의 선교이야기를 연재 한다.
/편집자 주

 

 

‘주의 종’으로 살게 하시고자 주변 사람들을 통해 부르셔
심하게 반대하던 아내도 하나님의 뜻임을 깨닫고 돌이켜

 

 

제사 피해서 갈멜산기도원으로 도망가다

 

우리 집안에는 제일 큰 행사가 제사이다. 아버지가 이북에서 넘어와 머슴을 살 때도 증조할아버지 제사를 드렸던 것이다. 집안의 행사 중에 제일큰데 내가 주님 안에 들어오니 제사를 드리면 안 되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부모가 예수를 믿지 않으니 다른 방법이 없었다. 제삿날이 돌아오면 ‘산으로 기도하러 가자.’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내는 아직 도망 나올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다. 둘 다 빠지면눈에 띄기 때문에 한 명은 남아있어야 했다. 아내는 음식을 차리는 현장에 있었지만 기도 많이 했을 것이다. ‘나의 남편이 하나님 앞으로 돌아온 것처럼 부모님도 하나님 앞에 돌아와서 제사를 드리지 않게 하소서!’ 나 또한 산에 가서 아직 복음 밖에서 살아가는 부모를 위해 기도했다. 당시에 임예제 원장님이 시무하는 안양에 있는 갈멜산기도원이 아주 가까우면서도 뜨겁게 역사가 일어나는 곳으로 유명해 그곳을 찾았다. 수많은 성도가 설 명절을 아랑곳하지 않고 하나님의 성산에 올라와 말씀을 들으며 기도하는모습이 보기만 해도 은혜가 넘쳤다.

 

나는 아버지와 결별을 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라 남들보다 더 애절하게 하나님께 매달렸다. 내가 응답을 받지 못하면 나뿐만 아니라 아내도 아이들도 다 엉망이 되어 다시는 부모님을 찾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기에 갈멜산의 엘리야처럼 죽기를 각오하고 기도를 하였다.

 

예배와 기도를 마치고 산에서 돌아오는데 마음이 편해졌다. 아버지는 제사를 중요시 여기기 때문에 내가 제사에 일부러 피한 줄알면 난리가 난다. 그런데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하나님께서 피할 길을주신 것이다. 그렇게 제삿날은 내가 없는 것처럼 되어버렸다. 서서히 아버지 안에 성령님이 역사하셨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우리의 인생사 모든 일에는 나의 뜻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주님의 때가 있는 것이다. 그 일이 성취되기 위해서는 우리가 하나님께 뜨거운 기도를 계속 올려야 한다. 기도외에는 하나님의 역사가 불가능한 것이다.

 

리어카를 끄는 신세

 

아버지는 증권으로 봉천동의 3억짜리 집을 날려버렸고 나 또한 2천만원을 그렇게 날려버렸다. 우리는 이제 마지막 벼랑 끝으로 밀려났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우리 가정이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한 것이다. 그래서 성남의 처고모 집으로 이사를 갔는데 이 집은 마치 ‘전설의 고향’에 나오는 집과 같았다. 언제 붕괴될지도 모르는 다 쓰러져가는 집이다.

 

화장실은 수세식이 아니고 재래식인데 아이들이 너무나 힘들어했다. 왜냐하면, 일을 보고 나면 똥물이 튀어 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들이옆에 있던 다세대 주택의 화장실을 가끔 눈치 보며 사용했는데, “어디서 화장실을 사용해!” 호통을 쳤다. 남도 아닌데 그러는 것이다. 다시는 갈 수 없는 형편이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비법을 알려주었다. “얘들아! 먼저 화장실 밑바닥에 신문지를 살짝 깔아놓는 거야! 그러면 똥물이 튀지 않아!” 아빠가 되어서 이런 것을 알려주어야만 했다.

 

집에는 쥐들이 사방에 뛰어다니니 아내는 무섭고 싫어했다. 여기에 살면서 우리는 여러 가지 어려운 일을 겪게 된다. 그때 생각했다. ‘우리 가족을 무엇으로 먹여 살려야 하나?’ 그때 떠오는 것이 ‘리어카를 끌자!’였다. 지난날 결혼을 위해서 처갓집에 가서 말했던 것이 생각났다. “딸을 제게 주시면 리어카를 끌더라도 밥은 굶기지 않겠습니다.”내가 말했던 상황이 전개된 것이다. 이제는 실천만 남았다. 가락동 시장으로 가서, 짐을 싣는 리어카를 끌기 시작했다. 리어카 크기가 적당한 줄 알았더니 상당히 길었다. 세워진 리어카를 끌어내리는데 집채만 한 것이 나를 덮치는 줄 알고 깜짝 놀랐다. 일하기도 전에 어깨가 부서지는 줄 알았다.

 

리어카를 대여해주는 사장이 유심히 내 모습을 안타깝게 지켜보았다. ‘오늘 리어카 임대료나 잘 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손님의 짐을 실으려면 길을 다니면서 큰 소리로 “리어카! 리어카!”라고 외쳐 대야 하는데 차마 그 말이 떨어지지 않았다.

 

하루에 빌리는 삯이 3천 원이었다. 학도 호국단 연대장이 되고 싶어 새벽마다 산에 올라가 구령 연습을 하던 내가 아닌가. 어차피 리어카 인생에 발을 들여놓았으면 여기서도 성공해야 한다는 심정으로 우렁차게 리어카를 외치기 시작했다. 그런데 전동차만 나타나면 나를 부르려고 했던 손님도 그쪽으로 간다. 그때면 맥이 풀린다. 손님들은 나를 종 부리듯 한다.

 

“리어카 이리와! 잘 실어야지! 이렇게 실으면 되나! 이것 날러! 저것 날러!”특히 비 오는 날은 푹푹 빠지면서 일을 했다. 내가 싣는 물건의 종류는 아주 다양했다. 나의 일은 처음 짐을 실을 때부터 마지막 옮겨주는 것까지해야 한다. 손님 측에서 보면 ‘일꾼을 부르는데 리어카가 달려있다’고 보면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그래도 나를 써주는 것이 고마워, “사장님! 감사합니다.”를 연발했다. 한번 나르고 천원 또는 이천 원을 받았다. 가락동 시장에서 리어카를 끌면서 많은 인생을 배우게 되었다.

 

밤잠을 못 자고 돈을 벌기 위해 허리띠를 동여매고 나온다. 어떤 때는 너무 피곤해 한쪽 구석에서 구부리고 잠을 자기도 한다. 따뜻한 오뎅 국물이라도 마시고 싶건만 오뎅 사먹을 돈도 엄두가 안 나 입맛만 다시면서 뒤돌아서야했던 순간이 어디 한두 번인가. 잘나가던 시절에는 상상치도 못한 일들을 겪으면서 눈물이 앞을 가리면 흙탕물로 손이 더러워져 팔소매로 눈물을 훔치며 하늘을 바라본다. “주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나를 도우소서. 반드시 일어설 줄 믿습니다.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의지 하나이다!” 힘주어 기도를 하면 할수록 눈물과 콧물이 앞을 가려 어디론가 낯을 피하고 싶지만 두고 온 아내와 자식들을 생각하며 다시금 목이 터져라 진흙으로 폭폭 빠지는 시장 바닥을 돌며 “리어카, 리어카!”를 외쳐 댄다. 그래서 내가 하는 말이 ‘리어카 인생을경험하지 못했으면 인생을 논하지 말라!’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렇게 힘든 생활임에도 불구하고 일을 마치고 새벽 예배에 참석하여 많은 은혜를 받게 되었다. 일상생활 중 예배와 기도 시간만이 지치고 힘든 몸과 마음이 쉼을 얻고 새 힘을 받게 되는 원천이 되었다.

 

 

이 집사는 주의 종감이야

 

나를 만나는 성도마다 하는 말이 있었다. “이 집사님은 주의 종감이야!”

 

“제가요?” “그렇다니까.” 개인적으로 예수 믿고 얼마 되지 않아 칠보산에서 4일 금식기도 한 후에 경운기를 타고 내려오면서 나는 생각했다.

 

‘앞으로 나의 진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계속 고민하고 있는데 내 마음속에 ‘주의 종’이 떠올랐다. 이게 웬 말인가? 32년 동안 예수 모르고 살아오다가 이제 예수 믿은 지 몇 개월 되지도 않는데 ‘주의 종이라니’ 나중에 깨달은 사실이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응답하실 때 여러 방법이 있겠지만 마음속으로도 알게 하시는 것을 알게되었다.

 

하나님의 음성은 다메섹 도상에서처럼 들려오기도 하고, 천둥 번개 치는 속에서도 들려오고, 피고 지는 나뭇잎을 보면서도 들려온다. 내가 칠보산에서 은혜를 받자마자 나에게 앞날을 예고해 주셨던 것이다. 또 지진후에 불이 있으니 불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더니 불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왕상19:12).

 

주변의 분위기가 점점 ‘주의 종’ 쪽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그런데 제일

 

반대했던 사람이 다름 아닌 아내였다. 아내 입장에서는 자신이 전도했고, 신앙생활 잘하는 성도로 살아가기를 바랐을 것이다. 그런데 분위기가 점점 그쪽으로 흘러가기 때문에 마음이 평안하지 못했을 것이다. 자신이 부정하면 부정할수록 그쪽 방향으로 흘러가기 때문에 자신이 막을 수 없는 것이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누가 감히 막을 수 있겠는가? 나중에는 아내도 하나님의 뜻으로 생각하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한 가정의 남편으로서 세상에서 돈 버는 남편이었다면 아내나 아이들이 고생을 덜 할 수도 있었는데, 주의 종의 길을 감으로 이날까지 안 해본 고생이 없다. 훗날 하나님이 갚아주실 것을 믿는다.

 

 

신학대학원 입학금에 대한 사연

 

신학대학원을 들어가려면 입학금이 필요했는데, 우리에게는 학비가 없었다. 이 상황에서 어떤 분이 등록금을 대준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하나님의 응답이라고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내일모레면 등록금 마감일인데 소식이 없다. 전화도 받지 않는다. 정말 난감한 일이었다. 이제 마지막으로 아는 안 집사에게 전화를 했는데, 그 가정은 형편이 안좋다. 그런데, 그 집에는 오래된 냉장고가 있었다. 이것을 바꾸려고 3년이나 계획하고 있었다. 냉장고를 구입할 수 있는 곗돈이 마침 있어서 냉장고를 구입하려는 순간에 내 전화를 받게 된 것이다.

 

사정 이야기를 하고, 기도를 부탁드렸다. 안집사가 말했다. “아직 우리는 냉장고를 바꿀 때가 아닌가 봐요!” 그 돈은 선지동산 입학하는 데 사용되었다. 정말 많은 것을 느끼게 해준다. 어떤 사람은 약속을 하고도 지키지 못하지만 어떤 분은 어려운 가정 형편임에도 불구하고 주의 종 학비를 후원하는 일에 동참하여 귀한 예물을 드렸는데 너무나 가치 있는 일을 한 것으로 본다.

 

만약 그 집사님이 학비를 주지 않았다면 그때 공부를 시작하지 못했을 텐데 지금 생각해도 너무나 고맙고 감사하다. 이런 사랑의 빚을 지고, 주의 종이 되었는데 나 어찌 주의 일을 소홀히 할 수 있겠는가. 후에 그 여집사는 신학을 하여 여의도순복음교회 전도사로 시무하게 되었고 남편되는 곽집사는 장로 장립을 받게 되었다. 자녀들도 주 안에서 잘 성장하는것을 보면서 어려울수록 주님의 이름으로 베푸는 사랑이 얼마나 고귀하게 쓰임 받고 더 풍성한 열매로 돌아오게 되는지 실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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