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순례 끝 : 예루살렘(2)] 예수님 흔적 아직도 생생한 감동의 은혜 넘실거려

끝없는 분쟁의 중심지 종교로 평화 유지 위해 기도 계속 돼
십자가의 길 끝나는 지점에 세워진 성묘교회 역사적 현장

기독타임스 | 기사입력 2021/05/30 [13:45]

[성지순례 끝 : 예루살렘(2)] 예수님 흔적 아직도 생생한 감동의 은혜 넘실거려

끝없는 분쟁의 중심지 종교로 평화 유지 위해 기도 계속 돼
십자가의 길 끝나는 지점에 세워진 성묘교회 역사적 현장

기독타임스 | 입력 : 2021/05/30 [13:45]

▲ 실로암 입구에서 순례객들이 예배를 드리고 있다.     ©

 

예루살렘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종교다. 

유일신을 믿는 세계 3대 종교인 그리스도교, 이슬람교, 유대교의 성지가 함께 모여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약 3000년 전 이스라엘 왕 다윗은 에브스 부족을 몰아내고 예루살렘을 수도로 정했다. 다윗의 후손들은 이곳에 궁전과 성전을 짓고 살았지만 곧 로마의 식민지가 되었다. 로마 식민지 시절 예수가 태어나 기독교 도시가 된 예루살렘은 7세기 때 칼리프 오마르 1세가 도시를 점령하면서 이슬람 도시가 되었다.

이스라엘이 멸망하자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을 떠나 서아시아와 북아프리카, 유럽 등으로 흩어져 살았다. 그리고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뒤 유대인들은 팔레스타인 지역에 이스라엘을 다시 세우려고 했고, 1948년 이스라엘이 다시 세워졌다. 이곳에 살던 아랍인들은 갈 곳을 잃고 유대인들과 끊임없이 전쟁을 치르게 되었다.

이렇게 예루살렘은 기독교가 시작된 도시이자 이슬람교와 유대교를 믿는 사람들이 살았던 곳으로 끝없는 종교와 민족 분쟁의 중심지가 되어 왔던 곳. 

그리고 이 시각에도 수많은 방문객과 순례자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흥미로운 도시이기도 하다.

우리 일행은 이러한 역사적인 예루살렘의 설명을 들으며 들뜬 마음으로 이곳저곳을 누비고 있다.

성전 시대로 불리는 고대 이스라엘 예루살렘은 주변의 광야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해발 790m 높이에 위치 해 있다. 예루살렘에서는 둘레 4km에 해당하는 성벽 안 구시가지와 외곽의 유서 깊은 유적지가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고대 이스라엘의 역사를 성전 시대라고 한다. 성전이란 전통적으로 전해져 내려오던 전례와 종교적인 교리를 말한다. 성전 시대 때 지은 신성한 건물 역시 성전이라고 하며 고대 이스라엘 역사는 제1성전 시대와 제2성전 시대로 나누어 있다.

고대 이스라엘에서 다윗 왕에 이어 왕위에 오른 사람은 지혜롭고 현명한 판단으로 수많은 명언을 남긴 솔로몬 왕이다. 솔로몬 왕은 모세가 시내 산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율법이 적힌 돌 판을 담은 계약의 궤를 보관하기 위해 성전을 세웠다. 

이때부터를 제1성전 시대라고 한다. 

솔로몬 왕이 세운 최초의 성전은 이스라엘 성벽 동남쪽 모퉁이였다는 설명. 현재 이슬람 사원인 알아크사 모스크 아래쪽으로 그 흔적이 남아 있다.

 

▲ 실로암 연못.     ©

 

△기혼 샘에서 물을 끌어오는 실로암 연못

 

제1성전이 완성된 시기는 일반적으로 기원전 950년경으로 보고 있다 약 370년 동안 신성시되었던 제1성전은 기원전 586년 신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파괴하여 지금은 성전 터와 상수도 시설 등 일부 유적지만 남아 있다. 

예루살렘을 비롯한 이스라엘 땅은 옛날부터 늘 물이 부족했는데 당시 예루살렘 성벽 동쪽에는 물이 풍부한 기혼 샘이 있다. 

 

▲ 사진 중앙에 바위 아래가 실로암 연못이 있던 곳이다.     ©

 

다윗 성에 사는 사람들은 이 기혼 샘에 의존해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것. 그래서 이스라엘 왕들은 기혼 샘에서 물을 끌어와 성안에 실로암이란 연못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히스기야 왕은 아예 기혼 샘과 실로암 연못 사이에 400m나 되는 지하 터널을 뚫어 물을 안정적으로 공급했다고. 지금도 지하 터널과 실로암 연못 일부가 남아 있어 직접 볼 수 있었다.

제2성전 시대는 기원전 516년부터 로마 군대에 의해 성전이 파괴된 서기 70년까지다. 제2성전은 제1성전 북쪽에 세워졌고 궁전과 3개의 감시탑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규모가 제1성전보다 훨씬 컸다고 한다. 제2성전 역시 궁전은 완전히 파괴되었고, 궁전의 일부인 벽(서쪽 벽)과 감시탑인 히피코스 탑(다윗 탑)만이 남아 옛 흔적을 엿볼 수 있다.

 

▲ 성묘교회 우측 계단.     ©

 

△성묘 교회

 

기독교의 심장, 성묘 교회 유대인만큼이나 예루살렘에 애착을 갖는 사람들은 기독교인들이라고 한다. 예루살렘이 바로 예수님의 발자취를 확인할 수 있는 성지이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의 대표적인 기독교 유적지는 십자가의 길이 끝나는 지점에 세워진 성묘 교회다. 예수님 자신이 짊어지고 온 십자가에 못 박혀 생을 마친 곳이자, 사흘 만에 부활한 곳으로 기독교인들이 세상에서 가장 신성하게 여기는 장소.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아이러니하게도 예수님이 로마군에게 처형 당한 이곳에 예수를 위한 성묘 교회를 지었다. 

성묘교회도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는데 336년 건설되었으나 614년 예루살렘을 점령한 페르시아 사산 왕조가 불을 질러 일부가 소실되었다. 

옛 모습으로 복원되어 오랫동안 유지되던 성묘 교회는 파티마 왕조의 칼리프 알 하킴이 1009년 다시 파괴했다고 한다. 

오늘날 볼 수 있는 성묘 교회는 1차 십자군이 복원한 것이라는 설명. 

십자군 전쟁은 11세기 말부터 13세기 말까지 서유럽의 로마 가톨릭군이 이슬람 세력에 빼앗긴 옛 기독교 성지와 영토를 되찾기 위해 벌인 전쟁을 말하는데 사실은 교황과 왕, 기사들이 영토를 넓히고, 경제적인 이익을 얻기 위해 벌인 침략 전쟁이이라는 설명이다. 

십자군 전쟁은 모두 아홉 차례나 실시되었지만 1차 전쟁을 제외하고는 모두 실패했다. 

 

▲ 예수님 빈 무덤서 기도하는 필자.     ©

 

여러 종파가 관리하는 성묘교회. 요새로 생각할 정도로 튼튼해 보이는 성묘교회는 로마네스크 양식을 띠고 있다. 처음 지어질 때에는 각기 다른 6개의 건물이었지만, 십자군이 복원하면서 하나의 건물로 만들어 놓았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고 묻힌 골고다 언덕도 당시에는 교회가 아니었는데 건물을 하나로 만드는 과정에서 성묘 교회에 속하게 되었다.

성묘교회에는 크고 작은 예배당과 지하 묘소, 종교 유적이 정말 많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내려진 곳에 만들어 놓은 기념묘지와 골고다 언덕을 가장 먼저 가 본다고 한다. 

기념묘지는 너무 많은 순례자들이 만져 눈이 부실 정도로 반짝인다. 순례자들은 너나없이 묘지에 입을 맞추고 기도한다. 그런 다음 골고다 언덕에 올라 커다란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상 앞에서 슬픔에 잠겨 기도하는 모습이 보인다.

성묘교회는 특이하게도 여러 종파가 나누어 관리하고 있다. 예수님의 묘와 십자가가 세워졌던 옛 골고다 언덕과 중앙 예배당은 로마 가톨릭교에서 관리하고, 예수님의 부활을 상징하는 또 다른 기념 묘지는 콥트 교파에서, 다른 주요 장소들은 그리스 정교회에서 관리하고 있다. 그리고 예루살렘을 지배했던 어떤 나라도 이곳만은 특별 종교 구역으로 지정하여 자치권을 보장해 주었다고 한다.

예루살렘!

평화를 기대하며 예루살렘은 누구나 인정하는 지구촌을 대표하는 종교 중심지다. 하지만 오늘날 예루살렘은 유일신을 믿는 세계 3대 종교의 성지라고 부르기 힘든 도시로 변해 버렸다. 

20세기 후반 잠시 여러 민족과 종교 단체들이 서로를 인정하고 평화를 유지했던 시절도 있었지만 탐욕스러운 정치인과 민족주의자, 종교 지도자들에 의해 평화가 사라져 버린 것이다. 

끝없이 테러와 보복이 계속되고 있어, 늘 긴장감이 감도는 위험한 문화유산 지역. 

예루살렘에 하루빨리 다른 종교와 문화를 인정하고 진정한 평화가 찾아올 날을 기대해 보며 애독자 여러분께 감사를 드립니다.

편집국장/신춘섭 목사

 

▲ 감람산에서 내려다본 예루살렘 전경. 좌측이 기드론 골짜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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